들어가며
우리는 이미 각을 재는 익숙한 방법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한 바퀴를 \(360\)으로 나눈 도(°) 입니다. 그런데 수학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라디안(radian) 이라는 또 다른 단위를 들여옵니다. 반 바퀴가 \(180°\)면 될 것을 굳이 \(\pi\)라 부르고, \(90°\)를 \(\dfrac{\pi}{2}\)라 씁니다. 왜 멀쩡한 도를 놔두고 이렇게 불편해 보이는 단위를 새로 만들었을까요?
핵심은 라디안이 각을 단위가 붙지 않은 순수한 실수로 바꿔 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은 각을 '반지름과 같은 호'로 재면 왜 단위가 사라지는지(1절), 그리고 그렇게 하면 원둘레 \(2\pi r\)이 그대로 각의 눈금이 되어 반 바퀴가 \(\pi\)가 되는 과정(2절)을 한 흐름으로 풀어봅니다.
1. 각을 '반지름과 같은 호'로 재면 단위가 사라진다
먼저 라디안의 정의부터 봅니다. 반지름이 \(r\)인 원에서, 어떤 각이 잘라내는 호의 길이를 \(l\)이라 합시다(호 — 원 둘레의 한 토막). 이 각의 크기를 라디안으로 재는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호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theta=\frac{l}{r}$$여기서 \(\theta\)(세타)는 각의 크기, \(l\)은 호의 길이, \(r\)은 반지름입니다. 이 정의의 아름다움은 나눗셈에 있습니다. \(l\)도 길이(예: cm)이고 \(r\)도 길이(cm)이니, 둘을 나누면 cm가 위아래에서 약분되어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단위가 없는 순수한 숫자뿐입니다.
이것이 라디안의 정체입니다. 도(°)는 "한 바퀴를 360조각으로 나눈 것 중 몇 조각"이라는, 사람이 임의로 정한 눈금입니다. 반면 라디안은 호의 길이가 반지름의 몇 배인가를 재는 값이라 어떤 임의의 약속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이 곧 실수 하나가 됩니다.
정의에서 \(l=r\)인 경우, 즉 호의 길이가 반지름과 딱 같아지는 각이 바로 \(1\) 라디안입니다. 이때 \(\theta=\dfrac{r}{r}=1\)이 되기 때문입니다. 호를 반지름만큼 감아올렸을 때 벌어지는 각 — 이것이 라디안의 기준 한 칸이고, 도로 환산하면 약 \(57.3°\)입니다.
각을 순수한 실수로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뒤에서 삼각함수를 미분하거나 급수로 펼칠 때, 각이 도(°) 같은 단위를 달고 있으면 계산할 때마다 성가신 변환 상수가 따라붙습니다. 각을 단위 없는 실수로 두어야 \(\sin x\)의 \(x\)에 그냥 실수를 넣듯 매끄럽게 다룰 수 있습니다. 라디안은 그 매끄러움을 위해 태어난 자연스러운 자입니다.
2. 원둘레가 그대로 각의 눈금이 된다 — 반 바퀴는 왜 π인가
이제 이 자로 한 바퀴를 재 보겠습니다. 각이 커질수록 호도 길어지는데, 한 바퀴를 꽉 채우면 호의 길이는 곧 원둘레 전체가 됩니다. 원둘레는 잘 알려진 대로 \(2\pi r\)입니다. 여기서 \(\pi\)(파이)는 '지름 대비 둘레의 비율'로, 어떤 원이든 둘레가 지름의 약 \(3.14\)배라는 고정된 수입니다.
한 바퀴의 각을 라디안으로 재면, 정의에 따라 호의 길이(원둘레)를 반지름으로 나누면 됩니다.
$$\theta_{\text{한 바퀴}}=\frac{2\pi r}{r}=2\pi$$여기서도 \(r\)이 위아래로 약분되어 사라지고 \(2\pi\)만 남습니다. 원의 크기와 상관없이 한 바퀴는 언제나 \(2\pi\) 라디안입니다. 작은 원이든 큰 원이든 호와 반지름이 같은 비율로 커지므로 그 비율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도와 라디안을 잇는 다리가 생겼습니다. 한 바퀴는 \(360°\)이자 \(2\pi\) 라디안이므로,
$$360°=2\pi \ \text{라디안} \quad\Longrightarrow\quad 180°=\pi \ \text{라디안}$$즉 \(\pi\)가 반 바퀴를 뜻하게 된 것은 신비한 우연이 아니라, 원둘레 \(2\pi r\)의 절반이 반 바퀴의 호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자주 쓰는 값들이 줄줄이 따라 나옵니다.
- 반 바퀴(직선 방향, \(180°\)) \(=\pi\) 라디안
- 직각(\(90°\)) \(=\dfrac{\pi}{2}\) 라디안
- \(60°=\dfrac{\pi}{3}\), \(45°=\dfrac{\pi}{4}\), \(30°=\dfrac{\pi}{6}\) 라디안
각각은 결국 \(180°=\pi\)를 적당히 나눈 것뿐입니다. 도에서 라디안으로 바꾸려면 \(\dfrac{\pi}{180}\)을 곱하고, 거꾸로 라디안에서 도로 오려면 \(\dfrac{180}{\pi}\)을 곱하면 됩니다 — 이 두 변환 상수 자체가 \(180°=\pi\)라는 한 줄에서 나옵니다.
3. 직접 확인해보기
아래 인터랙티브에서 원 위의 점을 드래그해 호를 늘였다 줄여 보세요. 같은 각이 위쪽에는 도(°)로, 아래쪽에는 라디안으로 동시에 표시됩니다. 호의 길이가 반지름과 딱 같아지는 순간을 찾으면 라디안 값이 정확히 \(1\)(도로는 약 \(57.3°\))이 되고, 반 바퀴에서는 라디안이 \(\pi\approx3.14\), 한 바퀴에서는 \(2\pi\approx6.28\)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호 = 반지름' 표시를 켜 두고 점을 돌려 보면, 호가 반지름을 몇 번 감았는지가 그대로 라디안 값이 된다는 정의를 눈으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핵심 정리
- 라디안은 각을 '호의 길이 ÷ 반지름'으로 정의한다. 길이를 길이로 나누므로 단위가 약분되어 사라지고, 각이 임의의 눈금 없이 순수한 실수가 된다. 호의 길이가 반지름과 같아지는 각이 \(1\) 라디안(≈ \(57.3°\))이다.
- 한 바퀴를 채우면 호는 원둘레 \(2\pi r\)이 되고, 반지름으로 나누면 \(2\pi\)만 남는다. 그래서 원의 크기와 무관하게 한 바퀴는 \(2\pi\) 라디안, 반 바퀴는 \(\pi\) 라디안이다 — \(\pi\)가 \(180°\)인 것은 원둘레의 절반이 반 바퀴의 호라는 사실의 결과다.
- \(180°=\pi\)라는 한 줄에서 \(90°=\dfrac{\pi}{2}\) 같은 값들과 도↔라디안 변환 상수(\(\dfrac{\pi}{180}\), \(\dfrac{180}{\pi}\))가 모두 따라 나온다.
낯설어 보이던 라디안은 사실 각을 가장 군더더기 없이 재는 자였습니다 — 원의 호와 반지름, 그 둘의 비율만으로 각을 실수로 옮겨 놓는 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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