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삼각비를 직각삼각형으로 배우고 나면 곧바로 벽에 부딪힙니다. 직각삼각형은 한 각이 이미 \(90°\)로 고정돼 있어서, 나머지 두 각은 아무리 커도 \(90°\)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계산기에 \(\sin 120°\)를 넣으면 \(0.866\)이라는 값이 멀쩡히 나오고, \(\sin 210°\)도 \(\sin(-60°)\)도 값이 있습니다. 삼각형 안에는 존재할 수도 없는 각인데, 그 사인 값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답은 삼각비가 서 있는 무대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삼각형이라는 좁은 무대에서는 \(90°\)까지가 한계지만, 무대를 으로 옮기면 각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고 음수도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삼각비를 원점에서 뻗어 나가는 동경(動徑) 위의 한 점으로 다시 정의해(1절), 그 정의가 왜 \(90°\) 너머와 음수 각까지 자연스럽게 품는지(3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호 규칙(사분면별 \(+\)/\(-\))이 왜 외울 필요 없이 저절로 따라오는지(2절)를 이어서 풀어봅니다.

1. 삼각비를 '삼각형의 변'에서 '원 위의 좌표'로 다시 정의한다

먼저 용어 하나만 짚겠습니다. 동경이란 원점에 한쪽 끝을 고정하고 각도만큼 회전시킨 반직선입니다. 시계의 초침을 떠올리면 됩니다 — 축에서 시작해 각 \(\theta\)(세타, 각도를 나타내는 그리스 문자)만큼 돌린 바늘이 동경입니다. 각을 '삼각형의 한 꼭짓점'이 아니라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보는 것, 이 관점 전환이 전부입니다.

이제 동경 위에 원점이 아닌 점 하나를 찍고 \(P(x, y)\)라 부릅시다. 원점에서 이 점까지의 거리를 \(r\)라 하면, 피타고라스 정리로

$$r=\sqrt{x^{2}+y^{2}}$$

입니다. 여기서 삼각비를 변의 비가 아니라 좌표와 거리의 비로 다시 정의합니다.

$$\sin\theta=\frac{y}{r},\qquad \cos\theta=\frac{x}{r},\qquad \tan\theta=\frac{y}{x}$$

이게 정말 예전 정의와 같을까요? \(\theta\)가 \(0°\)와 \(90°\) 사이라면 점 \(P\)는 오른쪽 위, 즉 제1사분면에 있습니다. 이때 \(x\)는 밑변, \(y\)는 높이, \(r\)는 빗변이 되어 예전의 직각삼각형이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그러니 \(y/r\)는 '높이/빗변', 곧 옛 \(\sin\theta\)와 정확히 같습니다. 직각삼각형 정의는 새 정의의 특수한 한 조각일 뿐입니다.

달라진 결정적 지점은 이겁니다. 좌표 \(x\)와 \(y\)는 음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동경을 왼쪽으로 돌리면 \(x\)가 음수가 되고, 아래로 돌리면 \(y\)가 음수가 됩니다. 삼각형의 변 길이는 음수일 수 없었지만, 좌표는 방향을 담고 있어 음수를 허용합니다. 바로 이 한 걸음 덕분에 \(90°\)를 넘는 각도 값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계산을 간단히 하려고 흔히 반지름 \(r=1\)인 원(단위원)을 씁니다. 그러면 분모가 \(1\)이라 사라져서

$$\cos\theta=x,\qquad \sin\theta=y$$

단위원 위의 점 좌표가 그대로 코사인·사인이 됩니다. 각을 넣으면 원 위의 한 점이 정해지고, 그 점의 가로 좌표가 코사인, 세로 좌표가 사인입니다.

2. r은 언제나 양수 — 그래서 부호는 x·y만 정한다

새 정의를 손에 쥐면 학생들이 흔히 통째로 외우던 것 하나가 저절로 풀립니다. 바로 각 사분면에서 어떤 삼각비가 양수인가 하는 부호 규칙입니다.

핵심은 거리 \(r\)에 있습니다. \(r\)는 원점에서 점까지의 거리이므로 항상 양수입니다. 방향이 어디든 거리는 음수가 될 수 없죠. 그렇다면 \(\sin\theta=y/r\)의 부호는 분모 \(r\)와는 무관하고 오직 분자 \(y\)의 부호를 따라갑니다. 마찬가지로 \(\cos\theta=x/r\)의 부호는 \(x\)를, \(\tan\theta=y/x\)의 부호는 \(x\)와 \(y\)의 부호 조합을 따라갑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위쪽(\(y>0\))이면 \(\sin\theta>0\), 아래쪽(\(y<0\))이면 \(\sin\theta<0\).
  • 오른쪽(\(x>0\))이면 \(\cos\theta>0\), 왼쪽(\(x<0\))이면 \(\cos\theta<0\).
  • \(\tan\theta=y/x\)는 \(x\)와 \(y\)의 부호가 같으면 \(+\), 다르면 \(-\).

이걸 네 사분면에 적용하면 유명한 규칙이 그림 없이도 나옵니다. 제1사분면(\(x>0,\,y>0\))은 셋 다 \(+\), 제2사분면(\(x<0,\,y>0\))은 \(\sin\)만 \(+\), 제3사분면(\(x<0,\,y<0\))은 \(x\)와 \(y\)의 부호가 같으니 \(\tan\)만 \(+\), 제4사분면(\(x>0,\,y<0\))은 \(\cos\)만 \(+\)입니다. 흔히 'All–Sin–Tan–Cos'로 외우는 그 표는, 사실 \(r>0\)이라는 사실 하나에서 x·y의 부호만 따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확인해 봅시다. \(\theta=120°\)면 동경은 왼쪽 위, 즉 제2사분면을 가리킵니다. 단위원에서 그 점의 좌표는 \((-0.5,\ 0.866)\)입니다. 그러면

$$\cos 120°=x=-0.5,\qquad \sin 120°=y=0.866,\qquad \tan 120°=\frac{y}{x}=\frac{0.866}{-0.5}=-1.732$$

가로 좌표가 음수라 코사인은 음수, 세로 좌표가 양수라 사인은 양수, 둘의 부호가 달라 탄젠트는 음수 — 제2사분면에서는 사인만 양수라는 규칙과 정확히 맞습니다. 삼각형만으로는 아예 존재할 수 없던 \(\sin 120°\)가, 원 위의 좌표로 보면 이렇게 값과 부호를 함께 얻습니다. 참고로 \(0.866\)은 \(\sqrt{3}/2\)의 소수 표현이라, 우리가 알던 \(\sin 60°\)와 크기가 같고 부호만 그대로 양수인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3. 음수 각도, 360도 너머도 — 회전으로 보면 당연하다

각을 '동경의 회전'으로 보면 두 가지가 공짜로 딸려 옵니다.

첫째, 음수 각. 회전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반시계 방향을 \(+\)로 약속했으니,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자연스럽게 음수 각이 됩니다. 예를 들어 \(-60°\)는 시계 방향으로 \(60°\) 돌린 동경인데, 이는 반시계로 \(300°\) 돌린 것과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sin(-60°)=\sin 300°\)이고, 그 점은 제4사분면에 있어 \(y<0\), 즉 \(\sin(-60°)=-0.866\)입니다. 삼각형에서는 '음수 각'이 말이 안 됐지만, 회전에서는 '반대로 돌린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뜻을 가집니다.

둘째, 한 바퀴 너머. 동경을 한 바퀴(\(360°\)) 더 돌리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방향이 같으면 좌표도 같고, 좌표가 같으면 삼각비 값도 같습니다. 그래서

$$\sin(\theta+360°)=\sin\theta,\qquad \cos(\theta+360°)=\cos\theta$$

가 성립합니다. 이것이 삼각함수의 주기성입니다 — 각을 무한히 키워도 값은 한 바퀴마다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예컨대 \(405°\)는 \(360°+45°\)라 \(45°\)와 같은 자리이고, 값도 \(\sin 45°=0.707\)로 같습니다. 이렇게 삼각비는 '삼각형의 한 각'이라는 굴레를 벗고, 모든 실수 각에 대해 값을 주는 함수, 즉 삼각'함수'로 올라섭니다.

4. 직접 확인해보기

아래 인터랙티브에서 \(\theta\) 슬라이더를 \(-180°\)부터 \(540°\)까지 돌려 보세요. 동경이 회전하며 원 위의 점 \(P\)가 움직이고, 그 좌표 \(x\)·\(y\)가 곧 코사인·사인으로 패널에 뜹니다. 점이 어느 사분면으로 넘어가는 순간 \(x\)나 \(y\)의 부호가 바뀌고, 그에 따라 사인·코사인·탄젠트의 색(양수는 초록, 음수는 빨강)이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지름 \(r\)는 언제나 \(1\)로 고정돼 부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표시됩니다.

'예시 각' 버튼으로 \(120°\)(제2사분면)·\(210°\)(제3사분면)·\(-60°\)(음수 각)·\(405°\)(한 바퀴 너머)를 눌러 보면, 본문에서 계산한 값과 부호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아래쪽 사인 파형 띠는 \(90°\)를 넘어도 값이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지며 한 바퀴마다 되풀이되는 주기성을 보여줍니다.

삼각비를 원으로 — 부호는 좌표가 정한다
동경을 돌리면 원 위 점 P의 좌표가 코사인·사인이 되고, r은 항상 양수라 값의 부호는 x·y가 결정합니다. 예시 각 버튼으로 둔각·음수 각·한 바퀴 너머를 확인해 보세요.

핵심 정리

  • 삼각비를 직각삼각형의 변의 비가 아니라, 원점에서 각 \(\theta\)만큼 돌린 동경 위의 점 \(P(x, y)\)와 거리 \(r=\sqrt{x^{2}+y^{2}}\)로 다시 정의한다. 그러면 \(\sin\theta=y/r\), \(\cos\theta=x/r\), \(\tan\theta=y/x\)이며, 제1사분면에서는 옛 직각삼각형 정의와 완전히 같다.
  • 좌표 \(x\)·\(y\)는 방향에 따라 음수가 될 수 있고 거리 \(r\)는 항상 양수다. 그래서 삼각비의 부호는 오직 \(x\)와 \(y\)의 부호가 정한다 — 사분면별 부호 규칙(제1은 전부 \(+\), 제2는 사인만, 제3은 탄젠트만, 제4는 코사인만)은 외울 게 아니라 여기서 저절로 나온다.
  • 각을 회전으로 보면 시계 방향은 음수 각(\(\sin(-60°)=\sin 300°\)), 한 바퀴 차이는 같은 값(\(\sin(\theta+360°)=\sin\theta\))이라는 주기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렇게 삼각비는 모든 실수 각에 값을 주는 삼각함수로 확장된다.

무대를 삼각형에서 원으로 옮기는 이 한 번의 관점 전환이, \(90°\)라는 천장을 없애고 부호 규칙까지 공짜로 안겨 줍니다. 삼각함수의 그래프도, 파동으로의 확장도 모두 이 원 위의 정의에서 출발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삼각비는 왜 삼각형 크기와 무관하게 똑같나 (닮음이 지키는 변의 비 — 이 글의 직각삼각형 정의) · 라디안은 왜 '실수'로 각을 재나 (원으로 옮긴 각을 실수로 재는 법) · 삼각함수는 도대체 목적이 뭔가 (원 위의 정의가 파동으로 확장되는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