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계산기에 \(\sin(-60°)\)를 넣으면 \(-0.866\)이 나옵니다. 그런데 \(\sin 300°\)를 넣어도 똑같이 \(-0.866\)입니다. \(-60\)과 \(300\)은 숫자로는 \(360\)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째서 사인 값은 소수점 끝자리까지 정확히 같을까요? \(\sin 45°\)와 \(\sin 405°\), \(\sin 765°\)가 모두 \(0.707\)로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엔 삼각함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관점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삼각함수는 우리가 넣은 '각도 숫자'를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그 각이 가리키는 '방향'만 봅니다. 방향이 같으면 각도 숫자가 얼마나 다르든 값은 완전히 같습니다. 이 글은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해, 한 바퀴를 더 돌아도 값이 되풀이되는 주기성(2절)과 시계 방향으로 돌린 음수 각(3절)이 어떻게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지를 풀어봅니다.
시작하기 전에 용어 하나만 짚습니다. 각을 잴 때 원점에 한쪽 끝을 고정하고 각도만큼 회전시킨 반직선을 **동경(動徑)**이라고 부릅니다. 시계의 초침을 떠올리면 됩니다 — 축에서 시작해 각 \(\theta\)(세타, 각도를 나타내는 그리스 문자)만큼 돌린 바늘이 동경입니다. 삼각함수가 '본다'는 방향이란 바로 이 동경이 가리키는 방향입니다. (동경 위 점의 좌표로 삼각비를 다시 정의하는 이야기는 직각삼각형엔 90도까지뿐인데 sin120도는 어떻게 재나 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 글은 그 정의를 발판 삼아 '방향이 같으면 값이 같다'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1. 삼각함수가 보는 것은 각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핵심을 먼저 그림으로 잡아봅시다. 반지름이 \(1\)인 원(단위원) 위에서, 각 \(\theta\)를 넣으면 동경이 그만큼 돌아 원과 만나는 점 \(P\)가 하나 정해집니다. 그 점의 가로 좌표가 코사인, 세로 좌표가 사인입니다.
$$\cos\theta = (\text{점 }P\text{의 가로 좌표}),\qquad \sin\theta = (\text{점 }P\text{의 세로 좌표})$$여기서 결정적인 사실은, 사인·코사인 값을 정하는 것이 오직 점 \(P\)의 위치뿐이라는 점입니다. 값은 점의 좌표에서 곧바로 읽어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각도가 같은 점 \(P\)를 가리킨다면? 점이 같으면 좌표가 같고, 좌표가 같으면 사인·코사인 값도 당연히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직관입니다. 각도라는 숫자는 '어느 방향을 가리켜라'라는 명령서일 뿐이고, 삼각함수가 실제로 읽는 것은 그 명령을 따른 뒤 동경이 멈춘 방향입니다. 명령서의 글자가 달라도 도착한 방향이 같으면, 삼각함수에게는 완전히 같은 입력인 셈입니다.
그럼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각도'는 언제 생길까요? 방법은 딱 두 가지입니다 — 한 바퀴를 더 돌거나, 반대로 돌거나. 이 둘이 각각 주기성과 음수 각입니다.
2. 한 바퀴를 더 돌아도 제자리 — 주기성
동경을 어떤 방향으로 세워 둔 다음, 거기서 한 바퀴(\(360°\))를 더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방향이 그대로이니 점 \(P\)도 그대로고, 따라서 사인·코사인 값도 변하지 않습니다.
$$\sin(\theta + 360°) = \sin\theta,\qquad \cos(\theta + 360°) = \cos\theta$$한 바퀴가 그렇다면 두 바퀴, 세 바퀴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바퀴를 더 돌든 방향은 그대로이므로, 정수 \(k\)에 대해 \(\theta\)와 \(\theta + 360° \times k\)는 언제나 같은 점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같은 방향(같은 동경)을 가리키는 각들을 서로 동경이 같은 각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사인·코사인·탄젠트 값이 모조리 같습니다.
앞머리의 \(45°\) 이야기가 이걸로 풀립니다. \(405°\)는 \(360° + 45°\)라 \(45°\)에서 한 바퀴 더 돈 것이고, \(765°\)는 \(360° \times 2 + 45°\)라 두 바퀴 더 돈 것입니다. 셋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니
$$\sin 45° = \sin 405° = \sin 765° = 0.707$$로 값이 같습니다. (\(0.707\)은 \(\sqrt{2}/2\)의 소수 표현입니다.)
이렇게 값이 일정한 간격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성질을 주기성이라 하고, 되풀이되는 간격을 주기라고 합니다. 사인·코사인의 주기는 \(360°\)입니다. 그런데 \(720°\)나 \(1080°\)마다 되풀이된다고 말해도 틀린 건 아닙니다 — 두 바퀴, 세 바퀴도 어차피 제자리니까요. 그래서 되풀이되는 간격 중 가장 작은 양수를 따로 기본주기라 부르고, 사인·코사인의 기본주기가 바로 \(360°\)입니다. 한 바퀴가 방향이 처음으로 완전히 되돌아오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기성 덕분에, 아무리 큰 각이 들어와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360°\)로 나눈 나머지만 남기면 \(0°\)와 \(360°\) 사이의 '대표 각' 하나로 줄어들고, 그 대표 각의 값만 알면 됩니다. \(765°\)를 \(360°\)로 나누면 몫이 \(2\)에 나머지가 \(45°\)이니, \(\sin 765°\)는 결국 \(\sin 45°\)만 계산하면 끝입니다.
3. 반대로 돌리면 음수 각 — −60도가 300도인 이유
이제 방향을 만드는 두 번째 방법, 반대로 돌리기입니다. 회전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수학에서는 반시계 방향을 양(\(+\))의 방향으로 약속합니다. 그러면 그 반대인 시계 방향으로 돌린 각이 자연스럽게 음수가 됩니다. 삼각형으로 각을 배울 때는 '음수 각'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지만, 각을 회전으로 보면 음수 각은 '반대로 돌린다'는 지극히 평범한 뜻을 가집니다.
여기서 앞머리의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60°\)는 시계 방향으로 \(60°\) 돌린 동경입니다. 그런데 시계 방향으로 \(60°\) 돌린 자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300°\) 돌린 자리와 정확히 같은 방향입니다. 한 바퀴가 \(360°\)이니 \(360° - 60° = 300°\)로, 부족한 만큼을 반대로 채운 셈이죠. 방향이 같으니 점 \(P\)가 같고, 값도 같습니다.
$$\sin(-60°) = \sin 300° = -0.866,\qquad \cos(-60°) = \cos 300° = 0.5$$일반적으로 시계 방향으로 \(\theta\)만큼 돈 \(-\theta\)는, 반시계 방향으로 \(360° - \theta\)만큼 돈 것과 같은 방향입니다. 그래서 음수 각은 언제든 \(360°\)를 더해 \(0°\)와 \(360°\) 사이의 양수 각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기성(2절)과 음수 각(3절)이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 둘 다 \(360°\)를 더하거나 빼서 같은 방향을 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방향이 같아도 세로 좌표(사인)와 가로 좌표(코사인)가 각각 어떻게 되는지는 따로 눈여겨볼 만합니다. \(-60°\)와 \(60°\)를 비교하면, 두 동경은 가로축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뒤집힌 방향이라 가로 좌표는 같고 세로 좌표만 부호가 뒤집힙니다. 그래서 \(\cos(-60°) = \cos 60°\)이지만 \(\sin(-60°) = -\sin 60°\)가 됩니다. 이 '뒤집기'가 코사인·사인의 대칭(우함수·기함수)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글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4. 직접 확인해보기
아래 인터랙티브에서 \(\theta\) 슬라이더를 \(-360°\)부터 \(720°\)까지 돌려 보세요. 동경이 회전하며 원 위의 점 \(P\)가 움직이고, 넣은 각 \(\theta\)와 함께 그것을 \(0°\)와 \(360°\) 사이로 줄인 '대표 각', 그리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가 패널에 뜹니다. 서로 다른 \(\theta\)라도 대표 각이 같아지는 순간 점 \(P\)가 겹치고, 사인·코사인 값이 똑같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시 각' 버튼으로 본문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볼 수 있습니다. \(-60°\)와 \(300°\)를 차례로 누르면 동경이 서로 다른 길로 돌지만 같은 자리에 멈추고 값이 같습니다. \(45°\)·\(405°\)·\(765°\)도 마찬가지로 한 자리에 모입니다. 아래쪽 사인 파형 띠에는 넣은 각의 위치가 점으로 찍히고, 한 바퀴(\(360°\)) 간격마다 같은 높이에 옅은 짝점이 함께 표시돼 값이 되풀이되는 주기성을 보여줍니다.
핵심 정리
- 삼각함수는 넣은 '각도 숫자'가 아니라 동경이 가리키는 방향만 본다. 방향이 같으면(같은 점 \(P\)를 가리키면) 각도 숫자가 아무리 달라도 사인·코사인·탄젠트 값이 모두 같다.
- 같은 방향을 만드는 첫째 방법은 한 바퀴 더 돌기다. 정수 \(k\)에 대해 \(\theta\)와 \(\theta + 360° \times k\)는 같은 값을 준다 — 이것이 주기성이고, 되풀이 간격 중 가장 작은 양수인 기본주기는 \(360°\)다. 덕분에 큰 각은 \(360°\)로 나눈 나머지 하나로 줄일 수 있다.
- 둘째 방법은 반대로 돌기다. 반시계를 \(+\)로 약속하면 시계 방향이 음수 각이고, \(-\theta\)는 \(360° - \theta\)와 같은 방향이다. 그래서 \(\sin(-60°) = \sin 300° = -0.866\)처럼, 음수 각은 언제든 \(360°\)를 더해 양수 각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다.
각을 '숫자'가 아니라 '회전이 멈춘 방향'으로 보는 이 한 번의 시선 전환이, \(360°\) 너머의 큰 각도 음수 각도 모두 익숙한 한 바퀴 안으로 데려옵니다. 이렇게 삼각함수는 모든 실수 각에 대해 값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한 바퀴어치의 방향만 알면 되는 아주 경제적인 함수가 됩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 직각삼각형엔 90도까지뿐인데 sin120도는 어떻게 재나 (삼각비를 원 위 좌표로 다시 정의해 부호까지 끌어내기 — 이 글의 출발점) · 라디안은 왜 '실수'로 각을 재나 (각을 실수로 재는 법, 한 바퀴가 왜 2π인지) · 삼각함수는 도대체 목적이 뭔가 (되풀이되는 방향이 곧 파동이 되는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