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삼각함수를 공부하다 공식표를 펼치면 한숨이 나옵니다. 두 각을 더한 것의 사인·코사인을 알려 주는 덧셈정리, 같은 각을 두 번 겹친 두 배 각 공식, 각을 반으로 접은 반각 공식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얼핏 보면 외워야 할 낱개 공식이 예닐곱 개는 됩니다.

$$\cos(\alpha-\beta) = \cos\alpha\cos\beta + \sin\alpha\sin\beta$$$$\cos 2\alpha = \cos^2\alpha - \sin^2\alpha, \qquad \sin^2\tfrac{\theta}{2} = \frac{1-\cos\theta}{2}$$

여기서 \(\alpha\)(알파)와 \(\beta\)(베타), \(\theta\)(세타)는 모두 각도를 나타내는 그리스 문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공식들을 서로 남남인 것처럼 하나하나 통째로 외웁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한 가족입니다. 딱 하나의 씨앗 공식만 손에 쥐면 나머지가 전부 거기서 자라납니다.

씨앗은 맨 위에 적은 \(\cos(\alpha-\beta)\), 즉 두 각의 차이의 코사인입니다. 이 하나가 어디서 나오는지만 이해하면, 두 각을 같게 겹쳐 두 배 각 공식을 얻고, 그 두 배 각 공식을 거꾸로 풀어 반각 공식을 얻는 길이 한 줄기로 이어집니다. 이 글에서는 그 가계도를 그림으로 따라가 봅니다.

1. 씨앗을 심는다 — 두 화살표의 각으로 얻는 코사인

먼저 무대를 단위원(반지름이 \(1\)인 원)으로 옮깁니다. 원점에서 뻗어 나가 원 위의 점에 닿는 두 화살표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가로축에서 각 \(\alpha\)만큼 돌아간 화살표 \(\vec{A}\), 다른 하나는 각 \(\beta\)만큼 돌아간 화살표 \(\vec{B}\)입니다. 삼각함수의 정의(각의 코사인 = 점의 가로 좌표, 사인 = 세로 좌표)를 그대로 쓰면 두 화살표의 좌표는 이렇습니다.

$$\vec{A} = (\cos\alpha,\ \sin\alpha), \qquad \vec{B} = (\cos\beta,\ \sin\beta)$$

이제 두 화살표의 내적(안쪽으로 얼마나 같은 방향을 보는지 재는 곱셈)을 두 가지 방법으로 계산해 봅니다. 내적을 두 방법으로 재면 같은 값이 나와야 하니, 그 두 값을 맞대면 공식이 튀어나옵니다.

방법 1 — 좌표 성분으로. 내적은 두 화살표의 가로끼리, 세로끼리 곱해서 더한 값입니다.

$$\vec{A}\cdot\vec{B} = \cos\alpha\cos\beta + \sin\alpha\sin\beta$$

방법 2 — 사잇각으로. 내적은 "두 화살표 길이를 곱하고, 사잇각의 코사인을 곱한 값"이기도 합니다. 두 화살표 모두 길이가 \(1\)이고, 두 화살표가 벌어진 각은 \(\alpha\)와 \(\beta\)의 차이, 즉 \(\alpha-\beta\)입니다. 그러니

$$\vec{A}\cdot\vec{B} = 1\cdot 1\cdot\cos(\alpha-\beta) = \cos(\alpha-\beta)$$

같은 내적을 두 번 잰 것이니 두 결과는 같아야 합니다. 그대로 등호로 이으면 씨앗 공식이 완성됩니다.

$$\cos(\alpha-\beta) = \cos\alpha\cos\beta + \sin\alpha\sin\beta$$

외운 게 아니라 같은 것을 두 번 재서 맞댄 결과입니다. (내적이 왜 "길이 곱하기 사잇각의 코사인"인지, 그림자로 보는 직관은 내적은 왜 코사인이 나오나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2. 씨앗에서 덧셈정리 가족이 자란다

씨앗 하나를 쥐었으니, 각을 살짝만 비틀어 나머지 덧셈정리를 길러 냅니다.

차이를 합으로. \(\beta\) 자리에 \(-\beta\)를 넣어 봅니다. 코사인은 음각을 넣어도 그대로이고(\(\cos(-\beta)=\cos\beta\)), 사인은 부호가 뒤집힙니다(\(\sin(-\beta)=-\sin\beta\)). 씨앗 공식에 그대로 대입하면

$$\cos(\alpha+\beta) = \cos\alpha\cos\beta - \sin\alpha\sin\beta$$

부호 하나만 바뀌었습니다. (음각을 넣으면 왜 사인만 부호가 바뀌는지는 각을 음수로 뒤집으면 왜 사인만 부호가 바뀌나에서 다뤘습니다.)

코사인에서 사인으로. 사인은 여각(합이 \(90°\)인 각)의 코사인과 같다는 관계, 즉 \(\sin\theta = \cos(90°-\theta)\)를 씁니다. 이 관계로 \(\sin(\alpha+\beta)\)를 코사인으로 바꾼 뒤 씨앗 공식을 다시 적용하면

$$\sin(\alpha+\beta) = \cos\big(90°-(\alpha+\beta)\big) = \cos\big((90°-\alpha)-\beta\big)$$

오른쪽은 씨앗 공식의 꼴(두 각의 차이의 코사인)입니다. 펼치면 \(\cos(90°-\alpha)=\sin\alpha\), \(\sin(90°-\alpha)=\cos\alpha\)이므로

$$\sin(\alpha+\beta) = \sin\alpha\cos\beta + \cos\alpha\sin\beta$$

씨앗 하나에 음각·여각이라는 이미 아는 규칙만 얹었더니 덧셈정리 네 줄이 전부 나왔습니다. 새로 외운 것은 없습니다.

3. 두 각을 겹치면 — 두 배 각 공식

이제 가장 예쁜 대목입니다. 덧셈정리에서 두 각을 같게 만들어 봅니다. \(\beta\) 자리에 \(\alpha\)를 넣는 것, 즉 두 화살표를 포개는 것입니다. \(\alpha+\beta\)는 \(2\alpha\)가 되고, 공식은 저절로 두 배 각 공식으로 접혀 들어갑니다.

$$\cos 2\alpha = \cos\alpha\cos\alpha - \sin\alpha\sin\alpha = \cos^2\alpha - \sin^2\alpha$$$$\sin 2\alpha = \sin\alpha\cos\alpha + \cos\alpha\sin\alpha = 2\sin\alpha\cos\alpha$$

두 배 각 공식은 별도의 발명품이 아니라 덧셈정리에서 두 각을 겹친 특수한 경우일 뿐입니다.

여기에 피타고라스 항등식 \(\sin^2\alpha+\cos^2\alpha=1\) 하나만 끼우면, 코사인 두 배 각 공식이 세 가지 얼굴로 갈라집니다. \(\sin^2\alpha = 1-\cos^2\alpha\)로 바꾸면 사인이 사라지고, \(\cos^2\alpha=1-\sin^2\alpha\)로 바꾸면 코사인이 사라집니다.

$$\cos 2\alpha = \cos^2\alpha - \sin^2\alpha = 2\cos^2\alpha - 1 = 1 - 2\sin^2\alpha$$

세 표현은 생김새만 다를 뿐 언제나 같은 값입니다. (이 하나의 항등식에서 얼마나 많은 식이 파생되는지는 사인 제곱 더하기 코사인 제곱은 왜 항상 1인가에서 다뤘습니다.)

4. 거꾸로 풀면 — 반각 공식

마지막으로, 방금 얻은 세 얼굴 중 마지막 것을 거꾸로 풀어 봅니다. \(\cos 2\alpha = 1-2\sin^2\alpha\)를 \(\sin^2\alpha\)에 대해 정리하면

$$\sin^2\alpha = \frac{1-\cos 2\alpha}{2}$$

여기서 각을 절반 눈금으로 다시 읽습니다. \(2\alpha\)를 통째로 \(\theta\)라 부르면 \(\alpha\)는 \(\theta/2\)가 되니, 위 식은 그대로 반각 공식이 됩니다.

$$\sin^2\frac{\theta}{2} = \frac{1-\cos\theta}{2}, \qquad \cos^2\frac{\theta}{2} = \frac{1+\cos\theta}{2}$$

(코사인 쪽은 \(\cos 2\alpha = 2\cos^2\alpha - 1\)을 같은 방식으로 푼 것입니다.) 반각 공식에서 제곱근을 씌워 \(\sin(\theta/2)\) 자체를 구할 때 \(\pm\) 부호가 붙는 이유도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제곱을 풀면 부호 정보가 지워지므로, \(\theta/2\)가 어느 사분면에 있는지를 보고 부호를 따로 정해 줘야 합니다.

반각 공식도 새 공식이 아니라 두 배 각 공식을 거꾸로 읽은 것이었습니다.

5. 한 그림으로 — 공식의 가계도

지금까지의 흐름을 한 줄로 이으면 이렇게 됩니다.

  • 씨앗: 두 화살표의 내적을 두 방법으로 재서 \(\cos(\alpha-\beta) = \cos\alpha\cos\beta+\sin\alpha\sin\beta\).
  • 덧셈정리: 씨앗에 음각(\(\beta\to-\beta\))·여각(\(\sin=\cos\)의 여각)을 얹어 나머지 세 줄.
  • 두 배 각: 덧셈정리에서 \(\beta=\alpha\)로 두 각을 겹침.
  • 반각: 두 배 각 공식을 거꾸로 풀어 절반 눈금으로 다시 읽음.

공식표 한 페이지가 사실은 씨앗 하나와 그 변형들이었던 셈입니다. 낱개로 외우는 대신 "이건 씨앗에서 어떻게 나왔더라?"만 물으면, 기억이 흐릿해져도 그 자리에서 다시 길러 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외울 것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잘 외우는 게 아니라, 여러 개로 보이던 것이 사실 하나였음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6. 직접 확인해보기

아래 인터랙티브에서 두 화살표의 각 \(\alpha\)와 \(\beta\)를 슬라이더로 움직여 보세요.

덧셈정리 모드에서는 좌표 성분으로 계산한 값 \(\cos\alpha\cos\beta+\sin\alpha\sin\beta\)와, 사잇각으로 잰 값 \(\cos(\alpha-\beta)\)가 항상 소수점까지 똑같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화살표를 아무리 돌려도 두 값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 그것이 씨앗 공식이 늘 성립한다는 뜻입니다.

두 배 각 모드를 켜면 \(\beta\)가 \(\alpha\)에 포개져 두 화살표가 하나가 됩니다. 이때 코사인 두 배 각 공식의 세 얼굴 \(\cos^2\alpha-\sin^2\alpha\), \(2\cos^2\alpha-1\), \(1-2\sin^2\alpha\)가 모두 같은 값 \(\cos 2\alpha\)로 모이는 것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덧셈정리 한 알에서 두 배 각까지 — 씨앗 공식과 그 변형
두 화살표의 내적을 좌표 성분으로 계산한 값과 사잇각으로 잰 값이 항상 같아 씨앗 공식이 성립하고, 두 각을 겹치면 코사인 두 배 각 공식의 세 표현이 같은 값으로 모입니다.

핵심 정리

  • 삼각함수 공식표는 낱개 암기 목록이 아니라 씨앗 하나와 그 변형이다. 씨앗은 단위원 위 두 화살표의 내적을 두 방법으로 재서 얻는 \(\cos(\alpha-\beta)=\cos\alpha\cos\beta+\sin\alpha\sin\beta\)이다.
  • 덧셈정리의 나머지는 씨앗에 음각(\(\cos(-\beta)=\cos\beta\), \(\sin(-\beta)=-\sin\beta\))과 여각(\(\sin\theta=\cos(90°-\theta)\))이라는 이미 아는 규칙만 얹으면 전부 나온다.
  • 두 배 각 공식은 덧셈정리에서 \(\beta=\alpha\)로 두 각을 겹친 특수한 경우다: \(\cos 2\alpha=\cos^2\alpha-\sin^2\alpha\), \(\sin 2\alpha=2\sin\alpha\cos\alpha\). 피타고라스 항등식을 끼우면 \(\cos 2\alpha=2\cos^2\alpha-1=1-2\sin^2\alpha\)로 세 얼굴이 된다.
  • 반각 공식은 두 배 각 공식을 거꾸로 푼 것이다: \(\sin^2\tfrac{\theta}{2}=\tfrac{1-\cos\theta}{2}\), \(\cos^2\tfrac{\theta}{2}=\tfrac{1+\cos\theta}{2}\). 제곱근을 씌울 때 \(\pm\)가 붙는 것은 사분면으로 부호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외울 것을 줄이는 길은 더 잘 외우는 게 아니라, 여러 개로 보이던 것이 사실 하나였음을 알아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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