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을 앞질렀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집계로 2025년 대만은 3만 9,489달러, 한국은 3만 6,227달러였고, 올해 전망치로는 격차가 4,700달러 가까이 벌어집니다. 한국은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2년 동안 대만을 앞서 왔습니다.

연도한국대만격차
202436,239달러34,252달러−1,987
202536,227달러39,489달러+3,262
202637,412달러42,103달러+4,691
2031 (전망)46,019달러56,101달러+10,082
2016년부터 2031년까지 한국과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 추이. 2025년에 대만이 한국을 앞지르고 이후 격차가 벌어진다.
2022년까지는 한국이 앞섰습니다. 2025년에 순서가 바뀌고, 전망 구간에서 격차가 벌어집니다.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Mapper NGDPDPC), 2026-09-06 조회.

역전을 끌어낸 힘은 한 회사에 쏠려 있습니다. TSMC는 대만 대표 지수(TAIEX) 시가총액의 41.5%를 차지합니다(8월 말). 2위 기업의 비중이 4.2%이니 열 배 가까운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TSMC가 번 돈은 대만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닿았을까요. 1인당 GDP의 역전이 곧 대만 사람들이 더 잘살게 됐다는 뜻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를 숫자로 따라가 봅니다.

평균은 앞섰는데, 가운데 사람의 월급은

1인당 GDP는 나라 전체의 생산을 인구수로 나눈 평균입니다. 아주 큰 회사 하나가 크게 벌면 대부분의 사람 지갑은 그대로여도 평균은 올라갑니다. 그래서 함께 봐야 하는 것이 중위소득, 곧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선 사람의 소득입니다.

같은 2024년 기준으로 비교하면 결과가 뒤집힙니다. 대만 주계총처가 집계한 2024년 연간 총임금 중위수는 54만 6,000 대만달러로, 한 달에 약 4만 5,500 대만달러(약 199만 원)입니다. 같은 해 한국의 월 중위소득은 288만 원이었습니다. 대만 수치는 단시간 근로자와 외국 국적 근로자를 포함한 전체 기준이고, 대만 국적 전일제 근로자만 보면 월 약 213만 원으로 올라갑니다. 어느 쪽으로 봐도 가운데 선 사람의 월급은 한국이 높습니다. 평균은 중간에 있는 사람의 자리가 아닙니다.

현지에서 체감하는 물가도 평균보다 가운데 사람의 소득을 따라갑니다. 식당, 택시, 호텔처럼 그 나라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의 값은 그 나라 임금 수준에 맞춰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순서가 바뀐 배경으로는 긴 흐름이 거론됩니다. 중국이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대만의 정보기술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생산을 옮기면서 대만 경제가 오래 힘을 잃었고, 그 사이 한국이 앞서 나갔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이라는 한 분야에서 TSMC가 세계를 장악하면서 순서가 다시 뒤집혔습니다.

순이익 앞에서 빠진 돈, 순이익 뒤에서 나가는 돈

TSMC의 2025년 지배주주 순이익은 1조 7,178억 대만달러, 원화로 약 76조 원입니다. 이 돈이 대만 사회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볼 때는 임금, 세금, 배당, 투자 네 갈래가 거론됩니다. 그런데 이 네 갈래는 회계 서류에서 서로 다른 층에 놓여 있습니다.

손익계산서는 위에서 아래로 빼 내려가는 서류입니다. 매출에서 원가와 비용을 빼면 영업이익이 되고, 거기서 세금을 빼면 순이익이 됩니다.

순서항목성격
1매출들어온 돈
2− 종업원급여 3,961억 대만달러비용 — 순이익이 계산되기 전에 빠짐
3= 세전이익 2조 417억
4− 법인세비용 3,465억 (유효세율 16%)비용 — 역시 순이익 전에 빠짐
5= 순이익 1조 7,178억여기서부터가 주주 몫
6→ 배당 4,668억 (27%) / 회사에 남긴 돈 73%순이익이 실제로 나뉘는 자리

순이익에서 나가는 갈래는 배당과 회사에 남기는 돈, 둘뿐입니다. 임금과 세금은 순이익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빠져나간 돈입니다. 네 갈래를 모두 "순이익 76조 원이 이렇게 나뉘었다"는 식으로 더하면 약 2조 9,000억 대만달러가 되어 순이익보다 훨씬 커집니다. 순이익 안에 없는 돈까지 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TSMC가 만든 가치가 대만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나"라는 질문에는 임금과 세금이 당연히 들어가야 합니다. 다만 그것은 순이익의 배분표가 아니라 회사가 새로 만든 가치 전체, 곧 부가가치의 배분표입니다. 질문이 달라지면 분모도 달라집니다.

세금에는 숫자가 두 개 있습니다. 손익계산서에서 빠지는 법인세비용은 3,465억 대만달러이고, 그해 실제로 현금으로 낸 법인세는 2,676억 대만달러입니다.

순이익보다 큰 투자는 어디서 나오나

TSMC의 2026년 투자 계획은 1조 8,000억 대만달러로, 2025년 순이익보다 큽니다. 번 돈보다 많이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비 투자는 순이익이 아니라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나갑니다. 그리고 영업현금흐름은 대체로 순이익보다 큽니다. 감가상각비 때문입니다.

감가상각비는 이미 지어놓은 공장과 장비의 값을 해마다 나눠서 비용으로 적는 항목입니다. 장부에서는 비용으로 빠지지만 그해에 실제로 나가는 현금은 아닙니다. 그래서 현금 기준으로 다시 세면 순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도로 더해야 합니다.

$$\text{영업현금흐름} \approx \text{순이익} + \text{감가상각비}$$

반도체 회사는 장비 값이 워낙 커서 감가상각비가 순이익에 맞먹기도 합니다. 그러니 순이익보다 큰 투자는 이 업종에서 흔한 모양입니다. "번 돈보다 많이 쓴다"가 아니라 "장부상 이익보다 실제 들어온 현금이 많고, 그 현금으로 짓는다" 가 정확한 설명입니다.

다만 그 투자가 모두 대만 안에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계획에는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공장이 들어 있어, 1조 8,000억 대만달러가 그대로 대만의 일자리와 임금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TSMC의 돈 버는 속도는 올해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8월 매출은 5,148억 대만달러로 1년 전보다 53.3% 늘었고, 1~8월 누적으로는 39.3% 늘었습니다.

배당은 대만 밖으로, 월급은 소수에게

배당. 주당 18 대만달러, 순이익의 27%가 주주에게 갔습니다. 대만증권거래소 집계로 TSMC 주식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9월 11일 69.27%입니다. 1년 전인 2025년 9월에는 73.5%였습니다. 이 가운데 뉴욕 증시에 상장된 예탁증서가 20.5%로 단일 주주 중 가장 큽니다. 배당의 약 70%가 대만 밖으로 나간다는 뜻입니다.

임금. 종업원급여 총액 3,961억 대만달러를 2025년 말 임직원 9만 557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437만 대만달러, 원화로 약 1억 9,000만 원입니다. 이 돈이 가장 확실하게 대만 사람의 삶을 바꾸는 갈래입니다.

그 흔적은 TSMC 본사가 있는 신주(新竹)에서 보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체 신이(信義)가 집계하는 주택가격지수로 신주 지역은 최근 5년 동안 73.6% 올라, 같은 기간 대만 전체(38.4%)의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출산율도 다릅니다. 2024년 대만 전체 합계출산율은 0.885명이었지만 신주시는 1.015명으로 1명을 넘었습니다. 다만 2025년에는 대만 전체가 0.695명, 신주시가 0.795명으로 함께 크게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효과가 닿는 사람의 수입니다. 대만 안에서 일하는 TSMC 임직원은 7만 8,207명으로, 대만 인구의 0.34%, 취업자의 0.67% 입니다. 월급이 삶을 바꿔도, 그 삶이 달라진 사람은 일하는 사람 150명 가운데 1명꼴입니다.

세금. 대만 중앙정부 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은 여전히 사회복지로, 2026년 예산의 27.4%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은 국방비입니다. 국방비 비중은 10년 내 최저였던 2023년 14.7%에서 2026년 18.1%로 올라 10년 만에 가장 높아졌습니다. 8월 20일 행정원을 통과한 2027년 예산안에서는 나토 기준 국방비가 1조 1,225억 대만달러로 GDP의 3.01%에 이릅니다. TSMC가 낸 세금이 늘어난 만큼 국민이 체감하는 복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싼 대만달러, 누구에게 이득인가

TSMC의 성공 뒤에서 일반 시민이 치르는 비용으로 꼽히는 것이 싼 통화입니다. 이코노미스트가 공개하는 2026년 7월 빅맥 지수 원자료로 대만달러의 저평가 정도를 계산하면 기준에 따라 순위가 달라집니다.

기준대만달러순위1위
단순 환산−61.0%2위 / 54개국인도네시아 −61.7%
소득 수준 조정−61.9%1위 / 52개국대만

단순 환산은 빅맥 값을 그대로 달러로 바꿔 비교한 것이고, 소득 조정은 소득이 낮은 나라는 물건값도 싼 게 자연스럽다는 점을 반영해 보정한 것입니다. 같은 통화, 같은 달, 같은 자료인데 기준을 바꾸면 1위도 되고 2위도 됩니다. 두 기준 모두 대만달러가 세계에서 가장 싼 통화 축에 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같은 표에서 원화는 단순 환산 −38.3%(13위), 소득 조정 −32.3%(10위)입니다.

빅맥 지수의 한계도 함께 봐야 합니다. 햄버거 하나의 값에는 임대료, 인건비, 세금,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음식을 얼마나 먹는지까지 섞여 들어갑니다. 상품 하나로 통화의 적정 가치를 재는 방법이라 방향을 가늠하는 데는 쓸 수 있어도, 몇 퍼센트 저평가라는 숫자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기준에 따라 순위가 뒤집힌다는 사실 자체가 그 한계를 보여줍니다.

싼 대만달러는 TSMC에 유리합니다. 매출은 사실상 전부 달러로 받는데 원가의 상당 부분은 대만달러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TSMC가 밝혀 온 민감도는 대만달러 가치가 1% 오르면 매출총이익률이 약 0.4%포인트 깎이고, 1% 내리면 그만큼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대만달러로 월급을 받는 사람에게는 수입품과 해외여행이 비싸지는 부담입니다.

정부가 누른 게 아니라면

통화가 이렇게 싸면 정부가 일부러 누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따릅니다. 하지만 대만은 한국과 함께 7월 23일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라 있어, 대놓고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한국이 오른 것과 같은 명단입니다.

대신 지목되는 것이 생명보험사입니다. 대만 생보업의 총자산은 2025년 말 37조 7,000억 대만달러로 GDP의 1.31배입니다. 2024년 말에는 1.43배였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배율이 내려왔습니다. 한국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다 합쳐도 보험사 총자산이 GDP의 약 50% 수준입니다.

이 거대한 자금이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해외로 향합니다. 대만 생보사가 굴리는 돈 가운데 해외 투자 비중은 2025년 말 68.33%입니다. 해외 자산을 사려면 대만달러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니, 그 흐름이 대만달러 약세를 굳힌다는 설명입니다. 대만달러 약세가 정책이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는 이 가설을 끝까지 확인하려면 생보사가 환율 변동 위험을 얼마나 헤지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대만 금융당국은 공식 헤지 비율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10월 8일, TSMC 9월 매출

이 기사의 숫자가 다음에 갱신되는 지점들입니다.

날짜일정확인되는 것
9월 17일 새벽 (한국시간)미 연준 FOMC 결정달러 금리 경로. 대만달러와 원화의 방향에 함께 영향
10월 8일TSMC 9월 매출 공시8월의 전년 대비 53.3% 증가가 이어지는지, 3분기 매출의 윤곽
매 거래일대만증권거래소 외국인 보유 통계69%대인 외국인 비중이 70%를 다시 넘는지

TSMC의 3분기 실적 발표일은 9월 13일 현재 공지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재무부의 다음 환율보고서도 법이 정한 기한은 있지만 실제 발표일은 예고되지 않았습니다.

일정 뒤에 확인해 볼 것들입니다.

  • 돈이 버는 속도와 나누는 속도. 매출이 50% 넘게 늘어나는 해에 종업원급여와 배당, 대만 내 투자가 같은 속도로 늘어나는지는 내년 초 발표될 2026년 연간 재무제표에서 드러납니다.
  • 중위소득의 다음 숫자. 대만의 2025년 총임금 중위수가 나오면, 1인당 GDP의 격차가 벌어지는 동안 가운데 선 사람의 월급 격차도 줄었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 생보사의 해외 투자 비중. 68%대의 비중이 내려오거나 헤지 비율 정보가 공개되면, 대만달러 약세가 구조에서 온다는 설명을 직접 시험할 수 있습니다.
  • 신주의 출산율과 집값. 2025년 출산율이 대만 전체와 함께 급락한 만큼, 고임금 일자리 효과가 출산을 떠받친다는 설명이 계속 성립하는지는 다음 해 숫자까지 봐야 합니다.

대만이 한국을 앞질렀다는 첫 표는 여전히 맞습니다. 다만 그 표에 적힌 것은 평균입니다. 평균을 끌어올린 회사의 배당은 약 70%가 해외 주주에게 가고, 투자의 일부는 해외 공장으로 가며, 가장 확실하게 삶을 바꾸는 월급은 인구의 0.34%인 직원에게 갑니다. 한 회사의 성공이 한 나라 사람들의 삶으로 번지는 길이 얼마나 좁은지가, 1인당 GDP 표 한 장 뒤에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