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AI 설비투자를 줄이겠다고 밝힌 빅테크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알파벳은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1,950억~2,050억 달러로 올렸고, 아마존은 약 2,200억 달러로 높였습니다. 아마존은 계획을 올린 이유 가운데 하나로 메모리 가격 상승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불어난 AI 투자의 돈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는지를 두고 나라마다 다른 길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은 빅테크가 회사채를 찍고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 국채 매수자를 키웁니다. 중국은 국채 대신 상하이 과창판(科創板)에 AI 기업을 상장시켜 자금을 모읍니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대형주에 몰렸던 돈이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세 갈래 길을 차례로 따라가 봅니다.

설비투자를 줄인 빅테크는 없었다

각 사가 최근 분기 실적 발표에서 내놓은 숫자입니다.

회사 (발표일)최근 분기 설비투자연간 계획
알파벳 (7월 22일)449억 달러2026년 1,950억~2,050억 달러 (기존 1,800억~1,900억), 2027년 "크게 증가"
메타 (7월 29일)311억 달러2026년 1,300억~1,450억 달러 (하단을 올림)
마이크로소프트 (7월 29일)410억 달러2026년 달력 기준 계획 "변동 없음", 다음 회계연도 "증가"
아마존 (7월 30일)531억 달러2026년 약 2,200억 달러 (기존 약 2,000억)
오라클 (9월 10일)285억 달러 (전년 같은 분기 85억)회계연도 900억~950억 달러 유지

마이크로소프트는 리스 회계 분류를 바꾸면서 올해 숫자가 약 1,750억 달러로 표시되는데, 이는 계획을 줄인 것이 아니라 집계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 다른 회사와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됩니다.

주목할 대목은 아마존이 계획을 올린 이유입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같은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더 많은 돈이 듭니다. 설비투자 금액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AI 장비를 더 많이 사는 것인지, 같은 장비를 더 비싸게 사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채권으로 모으는 돈

빅테크는 이 돈의 일부를 채권으로 조달합니다. 알파벳은 올해 2월 만기가 100년인 파운드화 채권을 발행했고, 8월에는 처음으로 호주달러 채권 55억 호주달러어치를 찍었습니다. 통화와 만기를 넓혀 가며 돈을 모으는 모습입니다.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기업들이 장기 자금을 대거 끌어가면 정부와 다른 기업이 같은 돈을 두고 경쟁하게 되고, 그 결과 금리가 오른다는 것이 구축효과 논리입니다.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9월 10일 4.95%로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두 번째 길, 스테이블코인

국채를 사줄 새 손님을 찾는 방법으로 스테이블코인이 거론됩니다. 산업혁명 때 철도에 돈을 댄 투자은행, 정보기술 혁명 때 스타트업에 돈을 댄 벤처캐피털처럼, 기술 혁신마다 새 금융 기법이 자금을 댔고 AI 시대에는 그 역할을 스테이블코인이 맡는다는 평가입니다.

그 논리의 출발점은 미국 밖을 떠도는 달러입니다. 연준 연구진은 달러 지폐 가운데 1조 달러가 넘는, 전체의 절반가량이 해외에서 쓰이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금고나 장롱에 잠겨 있던 이 달러가 달러 연동 코인으로 바뀌면, 코인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미국 단기국채를 사게 됩니다. 잠자던 달러가 국채 수요로 돌아오는 경로입니다.

최대 발행사 테더는 6월 말 미국 단기국채를 약 1,150억 달러 직접 들고 있었고, 국채를 담보로 하루 동안 빌려준 돈까지 합치면 약 1,336억 달러였습니다. 나라별 미국채 보유 순위에 넣으면 한국(1,347억 달러) 바로 아래 자리입니다. 미국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자에게 이자를 주지 못하게 하고 있어, 국채에서 나오는 이자는 발행사 몫이 됩니다. 테더는 2025년 순이익이 100억 달러를 넘었다고 공시했습니다.

은행권도 움직였습니다. 9월 1일 미국의 21개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2027년 상반기에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에 이자를 허용하면 예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왔고, 이 이자 문제는 9월 15일 미 상원 절차 표결을 앞둔 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CLARITY Act)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길, 국채 대신 과창판

중국은 AI와 반도체 기업에 필요한 돈을 주식시장 상장으로 모으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상하이증권거래소의 기술주 시장인 과창판에 올여름 굵직한 상장이 이어졌습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7월 27일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466% 올랐고, 로봇 업체 유니트리는 8월 19일 첫날 종가가 공모가의 5배를 넘었습니다. 낸드 업체 양쯔메모리(YMTC)도 330억 위안 규모의 상장 신청이 8월에 접수됐습니다.

그 결과 과창판 전체의 몸값이 크게 뛰었습니다.

기준일과창판 평균 PER
2025년 1월 3일38.82배
2025년 9월 4일60.15배
2026년 8월 17일130.69배 (올해 5월 이후 최고)
2026년 9월 11일119.29배 (상장사 617곳)

PER(주가수익비율)은 주가를 1주당 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118배라는 것은 지금 이익이 그대로라면 주가만큼 벌어들이는 데 118년이 걸린다는 뜻으로 흔히 풀이되지만, PER을 회수 연수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익이 빠르게 늘면 PER은 금방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1년 사이 평균 PER이 두 배가 됐다는 사실은 주가가 이익보다 훨씬 빨리 올랐다는 뜻입니다.

이 급등을 두고 중국 정부가 부동산에 묶였던 돈을 기술주 시장으로 옮기려 의도적으로 길을 열어준 결과라는 해석과, 이익이 따라오지 못하면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경고가 함께 나옵니다. 한국 반도체 대형주의 PER이 한 자릿수라는 비교도 자주 등장하지만, 그쪽은 앞으로 12개월 예상 이익으로 나눈 값이고 과창판 평균은 이미 발표된 이익으로 나눈 값이라 두 숫자를 그대로 견줄 수는 없습니다. 이익이 빠르게 늘어나는 업종일수록 두 방식의 차이는 커집니다.

한국, 반도체에 몰렸던 돈의 행방

한국 증시는 올여름 가장 크게 흔들린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코스피는 6월 22일 9,114.55로 고점을 찍은 뒤 7월 30일 5,593.56까지 38.6% 떨어졌고, 9월 11일에는 6,909.91로 일부 회복했습니다.

코스피 추이 그래프. 2026-06-01 8788.3798828125에서 2026-09-11 6909.91015625까지 72개 관측.
6월 22일 고점 뒤 7월 30일까지 급락하고, 8월 이후에는 6,250\~7,050 사이에서 오르내립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커서 두 회사 주가의 흐름이 지수 모양을 크게 좌우합니다. 자료: 야후 파이낸스 ^KS11 · 마지막 관측 2026-09-11 = 6,909.91 · 전체 추이는 시장 데이터 · 코스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시가총액 합계(우선주 포함)는 6월 하순 약 4,400조 원에서 9월 4일 약 2,851조 원까지 줄었습니다. 이 돈이 반도체를 떠나 원화 강세의 덕을 보는 내수 업종으로 번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미국 기술주 거품이 꺼질 때 한국 증시가 오히려 올랐다는 역사도 근거로 거론됩니다.

역사를 숫자로 보면 비유가 맞는 곳과 어긋나는 곳이 함께 보입니다.

  • 2000년 3월 10일 → 2002년 10월 9일(나스닥 붕괴 전체): 나스닥 −77.9%, 코스피 −30.4%
  • 2001년 한 해: 나스닥 −21.1%, 코스피 +37.5%. 원/달러는 1,267원에서 1,313.5원으로 원화가 오히려 약해졌다
  • 2003~2006년: 원화가 본격적으로 강해져 2006년 12월 913.7원까지 내려왔다

나스닥이 무너진 전체 구간에서는 코스피도 30% 넘게 빠졌습니다. 코스피가 나스닥과 반대로 크게 오른 것은 2001년 한 해뿐이었고, 그해 원화는 오히려 약했습니다. 원화가 본격적으로 강해진 것은 2003년 이후입니다. "미국 기술주가 빠질 때 원화 강세 수혜주가 한국 증시를 이끌었다"는 이야기는 시기를 붙이면 한 문장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금리와 주가 관계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9월 4일부터 11일까지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18bp, 2년물은 26bp 올랐는데 같은 기간 코스피는 3.3% 올랐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빠진다는 공식이 한 주 동안은 반대로 움직인 셈입니다.

메모리 업황을 보여줄 숫자들

한국 반도체의 다음 장면은 실적과 가격 지표에서 드러납니다. 현재 확인되는 숫자는 이렇습니다.

지표값출처 성격
마이크론 4분기(6~8월) 가이던스매출 500억 ±10억 달러, 매출총이익률 약 86%회사 발표
삼성전자 2분기매출 171.5조 원, 영업이익 89.5조 원 (반도체 부문 89.2조 원)회사 발표
SK하이닉스 2분기 (잠정)매출 79.32조 원, 영업이익 60.54조 원공시
2분기 전 세계 D램 매출1,547.3억 달러, 전 분기 대비 +59.5%업계 조사
3분기 범용 D램 고정거래가전 분기 대비 +13~18% 전망 (상승폭 둔화)업계 조사

가격은 여전히 오르고 있지만 오르는 속도는 줄어드는 국면이라는 조사입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반도체 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동시에, 앞의 아마존 사례처럼 빅테크의 설비투자 비용을 키웁니다. 같은 숫자가 한쪽에는 매출, 다른 쪽에는 비용입니다.

10월 1일 새벽, 마이크론 실적이라는 첫 지표

날짜 (한국시간)일정확인되는 것
9월 16일 새벽미 상원 CLARITY Act 절차 표결60표 통과 여부, 스테이블코인 이자 조항의 향방
9월 17일 새벽미 연준 FOMC 결정정책금리와 점도표
9월 17~18일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일본 정책금리(현재 1%)
9월 18일SK하이닉스 일본 공장 건설 보도 관련 재공시 예정일추가 생산기지 검토 결과
10월 1일 새벽 5시 30분마이크론 4분기 실적가이던스(매출 500억 달러) 대비 결과와 다음 분기 전망
10월 8일TSMC 9월 매출 공시AI 반도체 수요의 월간 온도
10월 14일미 9월 소비자물가연준 경로
10월 말삼성전자 이사회(공시상 시기)3분기 30조 원 안팎 현금배당 확정
10월 27~28일FOMC정책금리
11월 19일SK하이닉스 자기주식 40조 원 매수 기간 종료실제 매수 결과와 소각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과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 빅테크의 3분기 실적 발표일은 9월 13일 현재 공지되지 않았습니다. 10월 초에는 개천절 대체공휴일(10월 5일)과 한글날(10월 9일)로 국내 증시가 두 번 쉽니다.

일정 뒤에 확인해 볼 것들입니다.

  • 빅테크 설비투자의 가격 몫과 물량 몫. 10월 말 3분기 실적에서 연간 계획이 또 오른다면, 그 이유가 메모리·장비 가격인지 추가 발주인지를 봐야 AI 투자가 실제로 커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마이크론의 다음 분기 전망. 4분기 결과가 가이던스 범위 안에 드는지보다, 다음 분기 매출총이익률 전망이 86%에서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가 업황의 방향을 먼저 보여줍니다.
  • D램 고정거래가 상승폭. 3분기 +13~18%에서 4분기 전망이 더 낮아지면 가격 상승기의 끝자락, 다시 높아지면 공급 부족의 연장입니다.
  • 과창판 PER이 내려오는 방식. 119배가 이익 증가로 낮아지는지, 주가 하락으로 낮아지는지는 분자와 분모를 나눠 봐야 구분됩니다.
  • 금리와 코스피의 관계. FOMC 뒤에도 금리가 오르는데 코스피가 버티는 흐름이 이어지는지, 한 주짜리 예외였는지 확인할 대목입니다.

생각해 볼 점도 남습니다. AI에 드는 돈을 대는 사람은 길마다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빅테크 회사채를 사는 채권자와 달러 코인을 드는 개인이, 중국에서는 과창판 신규 상장주를 산 투자자가, 한국에서는 반도체 대형주의 주주가 그 돈을 댑니다. 누가 돈을 대느냐는 질문은 곧, 투자가 기대만큼 돈을 벌지 못할 때 누가 그 손실을 먼저 떠안느냐는 질문이기도 합니다.